전념專念하다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쓰다.
열중列中하다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다.
몰두沒頭하다
어떤 일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열중하다.
우리는 평소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시험 기간이니 공부에 열중해야지” “지금은 학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업무에 집중하여야 한다” 따위 표현들. 하나같이 비슷한 구조의 말들이다. 어떤 중요한 대상이 있으니, 당분간은 그것 하나만 바라보아라. 다른 것들에는 관심도 주지 말아라. 이렇게 얘기하는 모양이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에서 한국 사람들이 ‘전념’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사업이 잘 안된다며 걱정하는 친구에게, 길을 잘 못 찾겠다는 후배에게, 우리는 이렇게 조언한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결국 잘될거다. 용기를 가져라!”
걱정을 덜어 주는 데에는 좋은 공감 방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다소 무책임하다.
노력이 다라고?
멋진 목표를 설정한다. 목표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간다. 목표를 성취한다. 아마 사람들은 성취의 과정을 이런 것쯤으로 생각하나 보다. 마치 마라톤처럼. 저 지평선 너머에 펄럭이고 있을 결승점 깃발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끝내 얻게 될 달콤한 결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마라토너들을 너무 얕게 보는 일이지 않나 싶다.
마라토너는, 그 경기에 나가기까지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을까. 오래 전부터 훈련을 해서 달리기 근육을 키우고, 연습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찾아내고, 바람 세기와 방향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경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예상해서 그날 아침까지 미리 계획했을 것이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닌 문제는, 노력의 힘을 너무 미화한다는 점이다. 물론 노력을 통해 결실을 얻었다는 행복한 결말은 낭만적이고, 또 감동적이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거기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그 주제는 보통 비슷한 몇 가지로 수렴한다. 언더독의 반란, 노력파의 승리, 뭐 이런 것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결국 성공을 부르는 건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다. 이 악물고 마지막 스퍼트를 시도하게 하는 의지력이 마라토너의 우승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더 큰 요인은 애초에 거기까지 가고도 남을 체력을 만들어준 잘 짜인 훈련 루틴과, 없는 힘을 쥐어짜 다시 달릴 힘을 길러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이런 것일 거다. 하지만 감동을 앞세운 이야기는 모든 공을 의지에게로 돌린다. 가장 큰 거짓말의 시작이다.
노력의 힘을 믿으라는 건,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거라는 말은, 목표에 전념하라는 조언은, 그래서 너무도 잔인하다. 준비가 안 된 자가 노력만 투입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이런 말로 대답해주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일에 그닥 참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 딴에는 ‘일반론적인’ 해답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과연 모두에게 적용되는 성공의 법칙 같은 게 있다면, 그렇다면 성공을 못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다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러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살면서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1년이 52주, 오늘날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세이니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의 시간은 인당 4300주 내외다. 이미 얼마나 소비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양 끝보다는 중간 어디쯤에 위치했을 것이다.
수능 준비. 고시 공부. 사람들이 ‘전념’한다는 대상은 대체로 1년 단위로 움직인다. 남은 3000주가량의 시간 중 52주를 하나의 목적을 위해 희생하는 셈이다. 적어 보일 수도, 많아 보일 수도 있는 수치다. 우선 내게는 너무 크다.
시험 준비를 한다는 사람들을 보고 시간낭비라며 비웃는 게 절대 아니다. 그저 그런 일들을 위해 ‘전념’해야 한다고만 말하는 통념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전념하지 않을 때’의 1년동안 우리가 얼마나 변하는지 생각해보자. 만약 1년의 시간을 투입해서 내게 생긴 변화가 오직 ‘OO 시험 합격’ 한줄뿐이라면 매우 슬픈 일이지 않겠는가? 그 한 줄을 얻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중요한 일을 준비해야 할 때, 남들과는 마음을 다르게 먹는다.
“I care, but not that much.”
능동성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목표 하나만 바라보기보다, 멀찍이 떨어져서 전체적인 그림을 본다. 하나의 대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가져간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계속해서 점검하고, 이에 따라 목표는 수시로 바뀐다. 남들이 보기에는 줏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찾은 탐색의 방법이고, 여태까지는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인생 철학 얘기였다.